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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동그릇 같은거야 :: 2007/05/06 00:48

한참을 누워있었지만,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 겹의 담요를 덧깔았는데도 여전히 딱딱한 방바닥의 느낌이 무척 불편했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밤을 보낸다는 기분도 굉장히 낯설었다.



이따금씩...저녁밥 대신 주문해서 먹었던 라지 사이즈의 피자 냄새가 느껴지곤 한다.

주방쪽에 놓여진 작은 탁자 위에는 먹다 남긴 피자가 말라가고 있다.

뚜껑을 그대로 열어놓은 콜라도 지금쯤은 탄산가스가 거의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둘이 먹기엔 라지 사이즈는 너무 컸어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어둠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누워있으니

시간의 흐름이라는게 도데체 느껴지지 않는다.



후우우 하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 번씩 긴 한숨을 쉴때마다

한 웅큼씩 내 영혼이 뜯겨나가는 것 같다.



내가 사용하던 침대에는 지금 그 애가 누워있다.

그 애도 잠이 오지 않는 듯 벌써 몇 번째 몸을 뒤척이고 있다. 그 애가 몸을 비틀때마다

사각 사각 하며 홑이불이 쓸리는 소리가 들린다. 흐으음 하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나는 그 애의 마음이 불편할까봐서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그런 노력이 그 애에게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으리라는걸 잘 알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아무리 가깝고 편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작은 공간에 단 둘이 남겨진다면 왠지 모를 어색함이 생겨나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잠든 척 하는 수 밖에 없다.



3년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스물 여덟이었으니, 그 애는 겨우 열 네살의 나이였다.



꽤 쌀쌀했던 1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그 날은 내가 사진기사를 하는 선배를 도와

사진촬영을 하던 날이 있었다. 신학기에 나올 새 교복의 광고용 카탈로그 사진촬영이었다.

광고 사진이라고는 했지만, 전문 모델을 쓰지 않고 곧 고등학생이 되는 대여섯명의

중학생 아이들이 직접 교복을 입고 모델을 했었다.



그 애를 처음 본 건, 그 때의 촬영때였다.

모델을 하게 된 언니를 따라왔다던 그 꼬맹이는 제 언니의 두꺼운 패딩 점퍼를 꼭 끌어안은채

스튜디오의 한 구석에 비켜서서, 환한 조명을 받으며 자세를 취하던 제 언니를

부러운듯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그런 그 애를 왜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촬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평상복을 입고 있던 그 애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조명을 바꾸고, 스크린을 바꾸고, 그리고 교복모델 대신

그 애를 세트 위에 올려세웠다.

교복도 안입고 왔는데요... 하며 수줍음에 속삭이듯 말하던 그 애는 어설픈 자세로

뻣뻣하게 나의 주문에 자세를 취해 주었다.



내 카메라에 가득 들어왔던 열 네살의 그 애.



그 날 모델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은 그 애는 그 후로 종종 나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한 번은 중앙일보에서 주최했던 사진전에서 그 애를 찍은 사진이 입상하기도 할 정도로

그 애는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모델이었다.

그때 상을 받은 사진은 지금도 나의 방에 커다랗게 걸려있다.



오늘도 나에게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무심하게 씻고,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다시 챙겨 입고

느긋하게 사무실에 나와서 어제하던 일을 오늘도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째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여전히 잘 풀리지 않아서

나는 책상위의 모니터를 노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저씨 나 스파게티 사줘 하는 그 애의 전화를 받았던건 바로 그 때 였다.

말을 하면서 웃고 있는 듯 데구르르 구르던 그 애의 목소리.



나 서울에 왔어. 아저씨, 나 스파게티 사줘.



그 때는 퇴근을 하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회사를 나와서 그 애를 만나러

가기까지 꽤 긴 시간을 그 애는 나를 기다려야만 했다.

미리 약속이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애에게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걸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때부터는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무언가 불편하게,

무언가 불안하게 퇴근시간만 기다리게 된 것이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던 그 애를 데려간 곳은, 오래전에 몇 번 가본 적 있는

명동의 한 스파게티집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집은 아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집은 내가 사랑하는 여인하고만 갔던 집이었다.



내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던 여인과 갔던 집.



나름대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온 장소였는데

그 스파게티집에 대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추억이 생겨버렸다.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왔던 집 이라는 규칙은 이제 깨어지게 된 것이다.



그 애는 으에엑... 하는 소리를 내며 하얀 스파게티가 몇 가닥 돌돌 말려있는 포크를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조금 난처하게 웃으며 그 애의 그런 행동을 바라보는 중이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앉은 우리에게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다가와서

무얼 주문하시겠습니까..했을때 그 애는 되려, 아저씨가 좋아하는게 뭐라고 했었지? 하고

나에게 물었었다. 나는 거의 독백처럼 까보나라.. 라고 그 애의 물음에 답했던건데,

나 그거 먹을래 라고 너무 간단하게 메뉴를 정하는 바람에

많이 느끼할텐데...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볼로네제를 선택했던 것이다.

혹시나 그 애가 까보나라 스파게티를 맛없어하면, 내 볼로네제를 넘겨 줄 참이었다.

조금 매콤한 볼로네제라면 이 꼬맹이의 입맛에도 맞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스파게티를 한 입 먹어본 그 애가 정말로

그런 반응을 보일 때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 애가 까보나라의 맛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애의 표정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역시나, 크림과 치즈가 잔뜩 들어간 까보나라는

어린 소녀의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았나보다. 나는 차라리, 그 애가 우에엑 소리를 내며

입 안의 음식물을 접시로 뱉어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애 앞에 놓여진 접시를 집어 올린 후 나는 입도 대지 않은

볼로네제 스파게티 접시를 그 애 앞으로 쓰윽 밀어줬다.

미트소스와 토마토가 적당히 섞인 가장 무난한 맛의 스파게티라서 이거라면 그 애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이 경우는, 그 애의 입맛이 까다로왔다기 보다는

그 애가 선택한 까보나라는 성인이 먹기에도 다소 부담스러운 편이다.



어쩐지..무리한다 했어... 하는 말을 하면서 쿡쿡 소리를 내며 웃는 나를

이잉~! 소리를 내며 예쁘게 흘겨보던 그 애는 내가 넘겨준 접시의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게 훨씬 낫다.. 하는 말을 하면서.



나는 그 애가 먹던 스파게티를 포크로 쿡 찍어 돌돌 말았다.

하얀 스파게티 가닥이 내 포크에 빙빙 감겨 올라왔다.



스파게티를 오물거리는 그 애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저 꼬맹이가, 저 아이의 미소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내 접시에서 새우를 하나 건져올려

그 애의 포크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아저씨이... 하는 조그마한 소리가 연기처럼 가득 찬 나의 상념을 흩어놓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아저씨...하고 나를 부르는 그 애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자? 조그맣게 말하는 그 애.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애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던 나에게, 그 애가 몸을 일으키며 내는

소리가 들렸다. 사박.. 하는 얇은 천이 쓸리는 소리.

그리고 곧 그 애는 침대에서 살그머니 내려와 내가 누운 곁에 조심 조심 제 몸을 뉘었다.



침대가 많이 불편한가봐... 네가 여기서 잘래...? 하고 나는 가만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애는 내 곁에 누웠다가, 내가 몸을 일으키자 비척거리며 함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네가 여기서 잘래 하고 묻기는 했지만 나는 꼭 그 애의 대답을 들으려는 건 아니었다.

그 애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않고 앉아있는 그 애를 지나쳐서

나의 베개를 들고, 조금 전까지 그 애가 몸을 눕히고 있었던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자리.

그 애의 몸은 자그마했지만 내 침대에 그 애의 온기를 가득 남겨놓았다.



나는 침대위로 올라와 그 애에게 등을 돌린 채 벽을 바라보고 누웠다.

내가 침대에 올라와 누운 후에도, 그 애는 방바닥에 깔린 담요 위에

한참동안 오두카니 앉아있었다.



침대가 불편한게 아니라... 라고 말하는 그 애.



침대가 불편한게 아니라 나 혼자 있는게 싫어서 그래.

그 애는 저를 피해 달아난 나를 다시 쫒아 침대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제법 대담하게 나의 한쪽 팔을 끄집어 당기더니 내 겨드랑이 사이에 제 머리를 파뭍는다.

왼쪽 팔을 쭉 뻗어 나의 몸을 감싸안은 그 애.

내가 움찔하며 몸을 빼내려 하자, 그 애는 가느다란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나의 몸을 꼭 붙잡는다. 아유웅... 하고 투정 부리는 듯 한 소리를 내면서.



나의 팔을 베고 있는 그 애는 한 참 말이 없다. 가끔씩 내 가슴에 팔을 얹고있는 그 애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아직 잠들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때때로...



긴 숨소리를 그 애와 내가 번갈아 가며 낼 뿐이었다.

한 웅큼씩 서로의 영혼이 뜯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아저씨.

으응...

팔아프지.

아니..

나 돌머린데.



쿡.. 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 애도 히히히 하고 조그맣게 웃는다.

그 웃음에 어쩐지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깜깜한 나의 방이지만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 벽에 붙여놓은 커다란 판넬 안에 그 애가 웃고 있다.



나 많이 생각해봤어.

뭐를...

언젠가.. 아저씨가 그랬잖아... 네가 사랑을 알겠느냐구.....

으응...



있지 아저씨, 사랑은.. 우동그릇 같은 거야.



여전히 조그맣게, 조근조근 말을 하는 그 애.

우동그릇 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져서

사랑은 우동그릇 같은 것이라는 그 애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진다.

풋~ 하고 내가 웃으면 곧 헤헤 하는 수줍은 그 애의 웃음이 따라온다.

그 애가 웃으면서, 그 애의 작은 주먹이 내 가슴을 두 번이나 두드렸다.



풋~ 왜 하필..우동그릇이래...



열 일곱살 소녀의 감성이 사랑은 우동그릇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서른 하나의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우동그릇은 높게 쌓을 수 없잖아..그치.

으응.

그러니까 한 줄로 높게 쌓으려면, 적당히 쌓은 후에 그 옆에 새롭게 또 쌓기 시작해야해.

그런거니..?

높이 쌓을수록 옆으로.. 옆으로.. 또 옆으로...

다른 그릇들을 함께 쌓아 올리면 튼튼해서 무너지지 않을거야.

으응..



그 말은 좀 어렵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어려워..? 그러면......



그 애는 그러면 이라고 말하면서 며어어언 하고 뒷 말을 길게 늘어뜨린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나보다.



그러면 아저씨.

응..

사랑은.. 거울 같은 거야.

거울이라구?



사랑은 거울같다는 그 애의 말을 듣고 나는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아름답게 빛나지만 깨어지기 쉽다던 노래.



거울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거지 라면서 제법 진지하게 말을 하는 그 애.



그러니까 아저씨.. 내가 거울을 보면 아저씨 얼굴이 보이는 거야.. 훗훗.



훗훗 하고 웃으면서 그 애는 또 조그마한 주먹으로 나의 가슴을 몇 번 두드린다.

그 울림에 나도 같이 웃음이 난다. 하지만 내 웃음은 마치 맹독처럼 내 몸에 서서히 퍼져

나를 아프게 만든다. 너무 아파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건 어쩐지 좀 무섭다.

아저씨는 그게 뭐가 무서워?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 안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인다며.. 안무서워?

으응..그러고보니, 조금 무섭기는 하겠는걸?

그렇지? 좀 공포영화 같다 그치? 쿡쿡~

응, 공포영화다 쿡쿡쿡..



나는 쿡쿡 거리며 웃었다.

내 쪽으로 몸을 돌린 그 애도 나의 팔에 얼굴을 뭍고 쿡쿡쿡 하며 웃는다.

그 애는 나의 가슴을 두드리는 대신에, 내 옷깃을 꽉 움켜쥐고 있다.

쿡쿡쿡.. 하는 그 애의 웃음소리. 하지만 그 웃음에는 서글픔이 베어 있다.

쿡쿡 하는 그 애의 웃음은,

쿡쿡쿡...큭큭큭...흑흑흑.... 하면서 서서히 울음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애는 마치 울음을 참아 보겠다는 듯이..

지금 나의 가슴에 제 얼굴을 파뭍고 이를 꽉 물고 있다.

억지로 숨을 참으며 울음을 들이킬 때마다

그 애의 목에서 끄윽 끄윽 하는 울림이 전해졌다.

나는 그제서야 그 애 쪽으로 몸을 돌려 내 품 가득 그 애를 끌어안았다.

으흑 으흑 하며 슬픔에 힘겨운 저항을 하던 그 애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린다.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으허어엉 허엉엉 하면서 서럽게 우는 그 애가

나의 가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두드린다.



오랫동안 그 애가 품고 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그 애와 나를 온통 집어삼킨다.



나는 그저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그 애를 내 품 안에 안고있기만 했다.

그 애의 울음이 파도처럼 내 방에 퍼진다. 내 가슴이 젖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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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6 00:48 2007/05/0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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