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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2008/01/17 19:53

나는 잘각잘각 소리를 내며 굵은 모래알이 깔린 운동장을 걸어갔다.

처음에는, 운동장의 둘레를 따라 한 바퀴 천천히 걸어보았다.

맨 처음에 등나무가 얽혀있는 쇠의자가 나왔다.

시멘트로 세운 여러개의 기둥 위에 철근인지, 굵은 철사인지가 튼튼하게 기둥들을

연결하고 있고, 등나무는 그 베베꼬이고 뒤틀린 몸뚱이를 철사에 힘차게 얹어놓은채

가지를 뻗어내어 자라있었다. 겨울인데도 꽤 많은 잎사귀가 달려있는걸 보고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겨울인데도 잎이 달린 나무라니.

하지만 나는 등나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학교에나 이런 등나무 벤치는 꼭 하나씩 있어...하는 정도의 지식 뿐.

그래서 그 때도 나는, 어느 학교에나 이런 등나무 벤치는 꼭 있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무심하게 그 등나무 벤치를 스쳐 지났다.


그렇게 운동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가, 운동장의 가운데를 향해 걸어나갔다.

이런 굵은 모래알이 깔려있는 흙바닥을 밟아보는건 꽤 오랜만이라

이 흙바닥에서 나는 발소리가 무척 생소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서처럼 저벅저벅이 아닌, 잘각잘각하는 소리.

하기사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도 이런 흙이 깔려있었는데.

저벅저벅 보다는 잘각잘각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을텐데 나는 그 소리의

정겨움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오히려 낯설다고 느끼고 있는 거 같다.


운동장에 희끄무레한게 보였다.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바닥에 오징어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다리가 열 개 달린, 마른 안주의 오징어가 아니라,

공격과 수비를 정해서 서로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제법 비장하게 싸웠던, 어린 시절에

자주 하고 놀았던 그 '오징어' 놀이의 커다란 도형이 운동장 바닥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운동장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징어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꽤 자주 하던 피구나,

사방놀이 따위의 뭔가 바닥에 그림을 그려야만 할 수 있었던 놀이를 위해 운동장 바닥에

아얘 흰 플라스틱으로 그림을 그려놓았다.

지난번에는 이 근처까지 와놓고도 학교인 걸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며칠전에

이미 한 번 밟아본 운동장인데도 이런 도형이 그려졌다는건 이제서야 알아챘다.

요즈음은 이런것도 해주는구나..학교에서.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애도, 저 도형을 밟으며 친구들과 뛰어다녔을까...하는 생각을..


며칠전까지 재미있게 하던 호러게임이 생각났다. 화이트데이..

사탕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서서히 학교에 삼켜지고 있었다...

하는 나래이션으로 시작하는 그 무서운 공포게임.


역시...이런 생각은 유치하다....


텅 빈 학교의 텅 빈 운동장.

나는 혼자다. 그 운동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학교라는 특성상,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야에는 온통 밤하늘 뿐이었다.

그리고 점점히 박혀있는 흐릿했지만 반짝이고 있는 겨울의 별들.

시야 가득히 하늘과 별 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오래전에 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그 영화를 보며 나도 한번쯤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꼭 사랑을 외치는 건 아니겠지만...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너 보다 생일이 빨라. 네가 태어난 후로 내가 이 세상에 없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라고 말하던 여자 주인공.


나도 그렇다......

그 애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내가 이 세상에 없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렇지만....그 두 주인공과는 다르게, 그 애와 나는 함께 있었던 적도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고 있다.

어쩌면 그 애가 보았을지도 모를 이 겨울의 밤하늘...

온통 하늘뿐인 이 곳이 나에게는 세상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단 한번도...함께 한 적은 없지만....

10년 전, 5년 전, 혹은 1년 전.. 그 애가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내가 서있다.

그 애가 있었던 곳이 나에게는 세상의 중심인 셈이다.

그리고 그 세상의 중심에서...

나는, 10년 전의 그 애를 생각하고, 5년 전의 그 애를 생각한다.


그 애가 있었던 장소에 서게 될때마다..

1년 전, 6개월 전의 그 애를 만나게 될테고, 그 시간의 간격은 조금씩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애와 내가 같은 장소에, 같은 순간에 머물게 될 수 있는 날도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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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7 19:53 2008/01/1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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