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5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2008/01/17 19:53
나는 잘각잘각 소리를 내며 굵은 모래알이 깔린 운동장을 걸어갔다.
처음에는, 운동장의 둘레를 따라 한 바퀴 천천히 걸어보았다.
맨 처음에 등나무가 얽혀있는 쇠의자가 나왔다.
시멘트로 세운 여러개의 기둥 위에 철근인지, 굵은 철사인지가 튼튼하게 기둥들을
연결하고 있고, 등나무는 그 베베꼬이고 뒤틀린 몸뚱이를 철사에 힘차게 얹어놓은채
가지를 뻗어내어 자라있었다. 겨울인데도 꽤 많은 잎사귀가 달려있는걸 보고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겨울인데도 잎이 달린 나무라니.
하지만 나는 등나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학교에나 이런 등나무 벤치는 꼭 하나씩 있어...하는 정도의 지식 뿐.
그래서 그 때도 나는, 어느 학교에나 이런 등나무 벤치는 꼭 있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무심하게 그 등나무 벤치를 스쳐 지났다.
그렇게 운동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가, 운동장의 가운데를 향해 걸어나갔다.
이런 굵은 모래알이 깔려있는 흙바닥을 밟아보는건 꽤 오랜만이라
이 흙바닥에서 나는 발소리가 무척 생소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서처럼 저벅저벅이 아닌, 잘각잘각하는 소리.
하기사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에도 이런 흙이 깔려있었는데.
저벅저벅 보다는 잘각잘각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을텐데 나는 그 소리의
정겨움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오히려 낯설다고 느끼고 있는 거 같다.
운동장에 희끄무레한게 보였다.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바닥에 오징어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다리가 열 개 달린, 마른 안주의 오징어가 아니라,
공격과 수비를 정해서 서로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제법 비장하게 싸웠던, 어린 시절에
자주 하고 놀았던 그 '오징어' 놀이의 커다란 도형이 운동장 바닥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운동장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징어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꽤 자주 하던 피구나,
사방놀이 따위의 뭔가 바닥에 그림을 그려야만 할 수 있었던 놀이를 위해 운동장 바닥에
아얘 흰 플라스틱으로 그림을 그려놓았다.
지난번에는 이 근처까지 와놓고도 학교인 걸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며칠전에
이미 한 번 밟아본 운동장인데도 이런 도형이 그려졌다는건 이제서야 알아챘다.
요즈음은 이런것도 해주는구나..학교에서.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애도, 저 도형을 밟으며 친구들과 뛰어다녔을까...하는 생각을..
며칠전까지 재미있게 하던 호러게임이 생각났다. 화이트데이..
사탕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서서히 학교에 삼켜지고 있었다...
하는 나래이션으로 시작하는 그 무서운 공포게임.
역시...이런 생각은 유치하다....
텅 빈 학교의 텅 빈 운동장.
나는 혼자다. 그 운동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학교라는 특성상,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야에는 온통 밤하늘 뿐이었다.
그리고 점점히 박혀있는 흐릿했지만 반짝이고 있는 겨울의 별들.
시야 가득히 하늘과 별 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오래전에 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그 영화를 보며 나도 한번쯤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꼭 사랑을 외치는 건 아니겠지만...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너 보다 생일이 빨라. 네가 태어난 후로 내가 이 세상에 없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라고 말하던 여자 주인공.
나도 그렇다......
그 애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 내가 이 세상에 없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렇지만....그 두 주인공과는 다르게, 그 애와 나는 함께 있었던 적도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고 있다.
어쩌면 그 애가 보았을지도 모를 이 겨울의 밤하늘...
온통 하늘뿐인 이 곳이 나에게는 세상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단 한번도...함께 한 적은 없지만....
10년 전, 5년 전, 혹은 1년 전.. 그 애가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내가 서있다.
그 애가 있었던 곳이 나에게는 세상의 중심인 셈이다.
그리고 그 세상의 중심에서...
나는, 10년 전의 그 애를 생각하고, 5년 전의 그 애를 생각한다.
그 애가 있었던 장소에 서게 될때마다..
1년 전, 6개월 전의 그 애를 만나게 될테고, 그 시간의 간격은 조금씩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애와 내가 같은 장소에, 같은 순간에 머물게 될 수 있는 날도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고 있다면 말이다.
나에게서 너의 향기가 나 :: 2007/11/27 21:02
그러니까 그 날은 비가 무척이나 내렸다.
벌써 며칠째 계속되는 비였다. 그랬는데도 그 비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온 땅을 맹열하게 두드려대고 있다.
때 아닌 가을에 그런 폭우를 만난 사람들은 홍수나 농작물 따위를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가을이 지나가고 벌써 겨울이 시작되는건가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나의 마지막 마법의 가을은 그렇게 세찬 비와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날은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꽉 붙든채 위태롭게 흔들리던 나는
내가 내려야할 정류장에 거의 도착했음을 깨닫고, 가방안에서
푸른색의 삼단 우산을 꺼내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버스가 신호대기로 잠깐 멈춰 섰을 때, 나는 버스 안에 가득한 사람들을
조심조심 헤쳐내며 버스의 뒷문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내 어깨가 다른 이를 건드릴 때, 내 어깨에 늘어뜨린 가방이 어떤 이의 팔을 칠 때마다
나는 나즈막하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말해야 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고 사람들이 우루루 차에서 쏟아져 내렸다.
나도 그런 사람들 틈에 끼어서 버스에서 떨어져 나왔다가 손에 미리 쥐고있던 우산을 펼쳤다.
나의 우산은 우산살에 녹이 약간 슬어 있어서 완전하게 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산을 쓸때마다, 손으로 채 펴지지 않은 부분을 구부려서 마저 펴야 했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우산을 펴기까지는 꽤 짧은 순간이었지만
비가 워낙 거세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짧아진 머리칼과
추운 날씨 때문에 걸치고 있었던 회색 자켓을 온통 적시고 말았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옷에 뭍어있는 빗물을 떨어내다가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통이 좁은 커피색의 긴 원피스 위에 까만색 가디건을 걸친채
검정 우산을 들고 서있는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산을 펼치며 옷에 뭍은 물기를 손으로 떨어내던 나를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했던 그 애는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있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었기 때문에 그 애 같은 미소는 짓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애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는데
그 애는 그 미소와 함께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따뜻한 표정을 가진 그 애의 얼굴이 점점 나에게 다가오면서,
그 애의 따뜻함이 나에게 옮아오는걸 느꼈다.
그 애가 웃는 것처럼 나의 얼굴도 조금씩 풀어지며 따뜻한 미소를 짓는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 다가오던 그 애가,
나와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우산을 접어버리더니
나에게 종종 걸음으로 달려와 나의 품에 와락 안겨 버렸다.
그 바람에 나는 뒤로 조금 밀려났지만 곧 익숙한 손짓으로 그 애의 어깨를 감싸안아
빗물이 그 애에게 닿지 않게 최대한 우산을 기울였다.
나의 허리에 그 애의 두 팔이 감겨있다.
내 허리에서 팔을 풀어낸 그 애가, 나의 팔에 매달릴 때까지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 왼팔을 꼭 끌어안은 그 애가 드디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도 나는 그 애가 걸음을 걷는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 애가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들고서도 그 애를 에스코트 할 수 있었다.
편지라면 가끔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적지만 전화통화도 몇 번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란히 걷는다거나, 얼굴을 바라본다거나, 내 팔을 잡고 있는 그 애의 체온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3년 정도만에 처음인 것 같다.
그 때 생각나지 않아...?
라고 그 애가 말을 꺼냈다. 언제... 라는 말로 나는 반문했지만
그 애가 말한 그때 라는 게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애와 나의 추억 중에서 오늘 처럼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우리 처음 데이트 하던 날, 그 날도...
그 날도 비가 많이 와서... 라는 말을 하며 그 애는 말 끝을 흐린다.
물론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애를 만나러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난 나는
약속장소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그 애에게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을 해야 했다.
작은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느라, 서로 반 쯤은 흠뻑 젖어버렸던 기억.
지금도 그날처럼 작은 우산을 함께 쓰느라 서로 반 쯤 흠뻑 젖을 것 같다.
좀 큰 우산을 갖고 나올 걸 하고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산이 작아야 너에게 더 가까이 안길 수 있지 라며 웃어버리는 그 애의 말을 들으면서
그 애를 감싸고 있는 나의 팔에 조금 힘을 넣어 그 애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난 시간의 어색함은 이 빗줄기가 다 지워버린 거 같았다.
어느새 그 애와 내가 수 백번도 더 걸었을 이 골목길의 끝에 다다랐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입구 앞에서 그 애는 나의 팔을 놓고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잠깐 기다려 곧 나올께.
아니, 그냥 갈래.
바래다줄게 조금만 기다려.
그냥 나 혼자 가게 해줘.
나 혼자 가게 해줘 라는 말로 그 애는 나를 이겨버렸다.
여전히 따뜻한 표정을 짓는 그 애는 이런 빗길에 운전하는거 너무 위험해
하고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듯 나의 젖은 머리칼을 매만져준다.
그런 그 애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 애와 나 사이에는 굵은 빗방울이 땅바닥을 때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내 머리칼을 매만지던 그 애가 이제는 나의 옷깃을 매만지다가
나의 가슴에 제 얼굴을 파묻어 버린다.
나에게서 너의 향기가 나 라고 나즈막하게 속삭이는 그 애.
아주 오래전에 그 애에게 한 번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뭍고 있는 그 애의 머리를 가만히 감싸 안았다.
이제 나에게도 그 애의 향기가 깊이 베일 것 같다.
그럼....
이제 갈게. 라는 말을 하며 그 애가 돌아선다.
내가 차마 뭐라고 말 할 틈도 없이 그 애는 우리가 함께 걷던 길을 혼자서 차박차박 걷고 있다.
치마 폭이 좁아서 그 애의 걸음도 보폭이 좁다. 긴 치마 끝단으로 살짝 살짝 비춰 보이는
그 애의 하얀 종아리 덕분에 긴 어둠에 감싸여 있는 까만 그 애를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
까만 우산을 쓴 그 애가 점점 어둠 속으로 잠기는 것 같다.
우연히라도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들려주고 싶었던 얘기들이 무척 많았는데
우습게도 그 애가 멀찌감치 걸어간 후에야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 애를 뒤따라가야 하는 건지,
크게 이름을 불러야 하는 건지,
아직도 널 잊지 않았다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건지...
이 순간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마법의 가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불꽃축제 :: 2007/10/19 18:48
동대문 운동장 주변을 서성거리가 슬슬 배가 고파진 나는 떡볶이라도 한 접시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는 포장마차마다 뭘 파는지 살짝살짝 눈치를 보며 지나가던 내가,
포장마차 앞에서 호객을 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잡혀 들어간 곳에는
내가 정작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오뎅은 팔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 뭐 줄까? 했던 아주머니의 말에도 선뜻 메뉴를 고르지 못했던 것이다.
조그만 글씨들로 자잘하게 적혀있던 메뉴들 중에서 한참 만에 내가 골라낸 두 가지는,
우동과 김밥 이었다. 우동하고요 김밥 주세요.. 하는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우동 하나! 김밥 하나! 를 소리치고는 포장마차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금새, 내가 마실 물 한잔과 젓가락, 숟가락, 김밥 한 줄과 우동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다시 내 앞으로 나타났다.
우와.. 디게 빨리 나오네요... 하는 나의 뜨악한 말에
그래야 많이 팔지... 맛있게 먹어요 학생. 하고 아주머니는 대답해줬다.
맛있게 먹어요 학생....
학생...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요즈음은 주로, 총각, 아저씨..라고 불리우던게 대부분인데.
우동을 한 젓갈 집어 먹으며 탁자 한 켠에 올려둔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았다.
오후 6시 20분...
몇 분 전에 소극장에 전화를 걸어서 4시에 시작한 공연은 6시 40분에 끝난다는걸 확인했다.
연극이 끝나고, 그 애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면 앞으로 20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느긋하게 우동을 먹었다.
우동을 한 젓갈 먹고, 김밥을 하나 주워 먹고, 컵에 담긴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천천히 우물거리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봤다.
조금씩 조금씩 어둠이 쌓이고 있는 동대문 운동장 사거리...
동대문 운동장에서 사당 방향으로 가는 전동차의 맨 뒤쪽에서 만나자고 그 애가 전화를 했다.
그때 나는 그 애가 얘기해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애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전동차가 들어와서 한 무리의 승객들을 쏟아냈고
또 그 만큼의 승객을 다시 싣고 떠나갔다.
지금 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데..혹시 그 차에 타고 있어?
하고 내가 물어봤을때 그 애는, 맞아 이제 그 역에 설 차례야. 맨 뒤로 와 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승강장의 끝 줄에 다다랐고,
이윽고 바람을 일으키며 전동차가 역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전동차 안에서 그 애는 나를 찾는 듯 플랫폼을 여기 저기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리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래 기다렸지. 했던 그 애의 말. 나는 대답 대신 그 애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불꽃이 잘 보이는 장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신용산역에서 내려서 원효대교쪽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에는 이미 경찰들이 나와서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게 된 도로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애와 나는 사람들로 복잡한 그 거리를 손을 잡은채 걸었다.
연극이 생각보다 재미 없었다는 얘기, 너무 오래 걸어다녀서 발이 아프다는 얘기,
그리고 불꽃을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섞인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가득한 사람들을 헤치며
다른 일행이 모여있다는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데 사진기는?
나를 보고 반가워 하던 일행중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사진기를 가져 오지 않았다.
이미 전동차 안에서 그 애가 빈 손인 나를 보고 카메라 안갖고 왔어? 하고 물어봤었다.
그런 그 애에게 오늘 불꽃은 사진에 담지 않고, 내 마음에 담는 거야.. 라고
짐짓 폼을 잡으며 말을 했던 나였다.
그런 나의 말에 에이~~ 하는 조그마한 야유를 하며 눈웃음을 지어줬던 그 아이.
그렇지만 사진기는 안가지고 왔느냐 물어보는 동호회의 선배에게
그런 허세를 부릴만한 숫기가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할거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긴 꼬리를 끌며 하늘로 올라간 빛줄기가 커다란 폭음을 냈다.
드디어 첫 번째 불꽃이 피어 오른것이다.
와아아..... 하는 사람들의 탄성이 주변에서 퍼졌다.
차~알~칵.. 하는 셔터 소리.
그리고 꺄하하 하는 웃음 소리.
어머 니 얼굴이 짤렸어~ 하는 유쾌한 소리들로 내 주변은 가득찼다.
나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서서히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 번째 불꽃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불꽃들이 폭발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를 또 다른 불꽃이,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예쁘게 채워나갔다.
불꽃이 터질때마다 와아.. 하는 탄성과 차~알~칵 하는 소리들과 유쾌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일년쯤 전에도.
그랬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저 불꽃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사진에 담기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었다.
한시간여의 불꽃 쇼가 끝나고 내가 담아낸 불꽃의 사진들을 보며 흡족해 할 때
그 애는 오빠는 사진만 찍었잖아. 불꽃은 하나도 안봤지. 하고 그 애는 무심히 말했었다.
그 무심한 말이 너무나 차갑게 다가와서 나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애와의 마지막 데이트로 남아있는, 작년의 불꽃축제....
그때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그 애가 바라본 불꽃을 나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더라면..
그 애가 예쁘다고 느낀 불꽃을 나도 예쁘다고 느꼈었더라면..
내 손에, 카메라가 아닌 그 애의 손이 쥐어져 있었더라면..
불꽃 사진이 아니라, 불꽃을 함께 바라보던 추억을 남겼더라면..
하나씩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어 있던 나에게 그 애가 다가왔다.
왜 혼자 여기 서있어. 다른 사람들은 저 앞에서 사진찍고 있는데...
나에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애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수놓여지는 불꽃을 향하고 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빠안히 들여다 보았다.
한참 불꽃을 보던 그 애는, 나의 시선을 느끼고서 왜에? 하는 입모양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며는...... 하고 또 폼을 잡으며 말을 시작하는 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며는, 네가 저 불꽃을 볼때 내가 너의 눈동자를 찍어보면
네 눈에 저 불꽃이 비치는게 찍힐 거 같아서 말이지....으아아~
야.. 정말 예술이지 않겠냐? 넌 눈도 크고 이쁘잖아. 아우~~ 아무도 그런 생각은 안해봤을껄?
이런게 바로 퓰리쳐 감인데 말야. 우와.. 하필, 사진기가 없네~~~ 으아~
하고 나는 허세를 부렸다.
그런 말을 주절주절..혼자서 신나게 떠들면서도 나는 그 애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혹시나..
그 애의 커다란 눈망울에 예쁜 불꽃이 담길 것 같아서.
초록고양이 :: 2007/10/11 12:59
우리 잠깐만 앉았다가 가자.
그 애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안국에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거리까지
우리는 꽤 긴 거리를 걸어왔다.
그 애는 여전히 씩씩하게 걷는 나의 팔을 살짝 붙잡아 세워 시원하게 그늘이 진 테이블로 나를 앉혔다.
우리가 걷던 길가에 그다지 크지 않았던 커피점의 야외 테이블이 있었다.
명동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 까페에만은 손님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 애와 내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놓아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딸랑~ 하는 종소리를 내며 유리문을 밀고 나온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메뉴가 적힌 얇은 나무판과,
검정색 플라스틱 재떨이를 우리 테이블에 올려놓고 잠시 서있었다.
나 아이스커피 마실께 하고 그 애는 내 얼굴을 보며 말한다.
그래서 그 애와 나는 잠깐이었지만 눈이 마주친다.
나는 그 애의 눈을 바라보는게 무척이나 어려운데, 그 애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까지도
나와 눈을 맞추면서 하고 싶어한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아이스커피 두 잔 주세요. 한 잔은 시럽 넣지 말구요......
네. 선불입니다. 만 육천원이요.
사무적인 말투의 점원에게 나는 2만원을 꺼내 내밀었다.
그 애와 나는 말이 별로 없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애와 함께 있으면 말을 잘 하지 않게 된다.
아마 그 애는, 우리가 오랫동안 쉬지않고 걸어다녔던 것보다
그 긴 시간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 더 많이 힘겨울 것 같다.
그 애와 나 사이에 드리워진 불편한 침묵은 순전히 나의 탓이다.
내가 그 애의 눈을 바라보는걸 무척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에 내 말수까지 줄어들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항상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그 애가 침묵을 깨면, 나는 그 애의 말에 대답을 하던지..하지 않던지.. 둘 중 하나이다.
나는 가방의 지퍼를 열어 이제는 거의 비어버린 담배갑을 손에 쥐었다.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고 성냥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네모난 성냥갑에서 성냥개비를 하나 꺼내
성냥갑 옆구리에 틱틱 그어댔다.
힘없이 부러져나가는 성냥개비. 나는 다른 성냥개비를 다시 꺼내든다.
그 애는 그런 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생글거리며 바라보다가 작은 손가방 안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라이터를 꺼내 땡강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열어 불을 붙인다.
언젠가 내가 탐이 나서 그 애에게 빼앗으려다가 실패했던 그 라이터였다.
나는 그런 심플한 모양의 네모난 은빛 지포라이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인지
막상 그 라이터를 사려고 하면 괜시리 돈이 아까워져 쓴 입맛만 다시고 돌아서곤 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그 애는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날은 담뱃불을 붙이려고 성냥을 그어대던 나에게
지금처럼 라이터 뚜껑을 땡강 열어서 불을 붙여 주었다.
당연히 나는...
그 라이터는 그 애가 나에게 주는 선물인 줄 알았었는데, 그 애가 내 담배에 불만 붙여주고
다시 제 손가방에 집어넣는 걸 보고 속으로 적잖이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집요하게 빼앗으려고 하다가 결국 빼앗지 못한 그 라이터는 지금도 그 애가 들고 다니며
가끔 나에게 불을 붙여주는데 사용하고 있다.
담배도 안피우는게 라이터는......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후욱 내뱉었다.
그리고 우리가 주문한 아이스커피가 도착할때까지도 우리는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너는 전생에 고양이였을거라고 했지.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초록고양이가 되고 싶어.
우리의 침묵속에 그 애의 방울같은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그 애의 말을 들으면서 초록고양이, 그런 색깔의 고양이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텅 빈 얼굴로 길 건너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보라색 눈빛을 하고 있는데, 외톨이로 태어나서 열대우림 어딘가에서 살고있데.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른 생물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데.
꿈꾸듯 조근조근 말하는 그 애의 목소리.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고개를 돌려 정말..? 하고 말해 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 애가 줄곳 짓고 있었을 따뜻한 느낌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역시 고양이 얘기에는 민감하구나. 나보다 고양이가 더 너의 관심을 끌다니.
뭐야 그게...
그 애의 조근한 목소리에 나는, 뭐야 그게 하고 중얼거렸다.
나를 향한 그 애의 마음을 너무 똑바로 바라본 것 같아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야. 그 책도 소설이니까 아마 사실은 아니겠지.
여전히 사근사근한 그 애의 목소리.
초록고양이.
정말로 이 세상에 그런 고양이가 있다면, 나도 그런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록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 애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아마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이 일치했을 것 같다.
짧은 인생도 아닌데... 하면서 그 애가 말을 잇는다.
짧은 인생도 아닌데 그 긴 시간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다고 해서 그게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
내가 누굴 좋아하게 되는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수없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 한 명쯤 있을수도 있잖아.
나는 잠자코 그 애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그 동안 그 애의 말에 어떤 대꾸를 했던 것보다 잠자코 듣기만 했던게 더 많았으므로
나에게는 지금 이런 분위기도 이상할 건 그다지 없었다.
그래도 그 애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우리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서로 만난 사람들이고
내가 누굴 좋아하고, 네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냥 우리들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이야.
네가 그것만 이해한다면 나를 대하는게 그다지 힘들지 않을거야.
그 애의 마지막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뭔가 아주 작지만 무척 뜨거운 것이 가슴 한 쪽에 콱 박힌듯한 기분이 들었다가
그 뜨거운게 점점 가슴 전체를 아프게 만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바라본다.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그 애가 일깨워 준 것 같아
속상했지만 한 편으로는 기분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는 나도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큰 눈망울에 눈물을 담고 있는 그 애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대 돌아오면 :: 2007/06/13 19:24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게...
하고 한참만에 그 애가 말을 꺼냈다.
이제 환하니까 나 혼자 갈 수 있어..
그때까지도 나는 불과 몇 분 전에 그 애가 불렀던 노래를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지친 기억들만 안은채로 살긴 싫어요.
슬픈 그 거리를 그대 함께 걷고 싶어요.
이런 나의 마음 그대에게 닿길 바래요.
다시 그대와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다시 그대와 사랑할 수 있도록..하는 부분을 떠올릴 때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게..하는 얘기를 그 애가 했던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마법의 주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는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나란히 걷다가 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 애가 한 발짝 더 걸어 내 앞에 섰다.
마주서서 서로 바라보는 우리.
따뜻한 그 애의 미소가 나에게 옮아온다
이제 곧 장마철이래.. 하고 말을 잠깐 멈추는 그녀.
그러니까 우산 꼭 챙겨갖고 다녀 하고 그 애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저 빙긋이 웃고 있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았지..? 하고 재차 당부하듯 말하는 그 애.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알았어.. 하고 짧게 말했다.
나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는듯 그 애가 뒤돌아 걷기 시작한다.
자각자각 하는 그 애의 발소리가 골목의 저쪽 끝까지 날아간다.
그 자각자각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친 기억들만 안은채로 살긴 싫어요.
슬픈 그 거리를 그대 함께 걷고 싶어요.
이런 나의 마음 그대에게 닿길 바래요.
다시 그대와 사랑할 수 있도록..
그 애가 불렀던 노래. 나는 그 노래를 나즈막히 불러보았다.
자각자각 하는 소리가 멈추고 천천히 걷던 그 애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애는 살짝 웃는 것 같더니 이내 조그마한 손을 활짝 펴 나에게 흔들어 준다.
그제서야 나는 긴장이 탁 풀렸다. 후우..하고 숨이 터져 나온다.
귀엽게 흔들리는 그 애의 손을 보면서 나 곧 결혼해 하는 그 애의 말을 생각했다.
나 곧 결혼해...와 줄 거지? 했던 그 아이의 목소리.
그 애가 지금도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그 인사에 나도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답례한다.
자꾸자꾸 흔들어 준 손...
너무 고마워........
사랑 :: 2007/05/22 23:01

마주보는게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
Olympus OM-1, G.Zuiko 50mm f1.4, 후지 리얼라 100, Cannon CanoScan 4200F 현상물 스캔.
오래 전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눈에 띈 코스모스 커플.
따로 적어놓은 사진 정보를 보니, 한창 필름 카메라에 매료되어 올림푸스 오엠-1 을 들고다니던
시절의 사진이다... ( 이러니까 내가 꼭...뭔가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 같다... )
그때 생각이 나서...포스팅 해봄. ^^;;;
그 애와의 드라이브 :: 2007/05/22 19:33
벨트 매.. 하고 다소 무뚝뚝한 말투로 그 애가 자신의 몸을 안전벨트로 고정시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못들은 척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애에게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차의 시동을 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낸 그 애가 벨트를 매야 출발하지 하는 말을
잔소리처럼 할 때에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큰둥했던 나였다.
그 애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애의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 머문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오늘은 꽤 오랫동안 눈썹을 정돈했고, 속눈썹이 길어 보이게 한다는 마스카라로 몇 번이나
나의 속눈썹을 문지르며 화장을 했다. 게다가 그 애에게 예뻐보이기 위해 뺨에 연한 볼터치까지 했다.
오늘은 그 애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 애도 나를 예쁘게 봐줄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그 애가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나의 모습을 초라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래도 그 애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 애의 시선이 나의 눈썹에서, 뺨으로, 내 콧날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나는 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