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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축제 :: 2007/10/19 18:48

동대문 운동장 주변을 서성거리가 슬슬 배가 고파진 나는 떡볶이라도 한 접시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는 포장마차마다 뭘 파는지 살짝살짝 눈치를 보며 지나가던 내가,

포장마차 앞에서 호객을 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잡혀 들어간 곳에는

내가 정작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오뎅은 팔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 뭐 줄까? 했던 아주머니의 말에도 선뜻 메뉴를 고르지 못했던 것이다.


조그만 글씨들로 자잘하게 적혀있던 메뉴들 중에서 한참 만에 내가 골라낸 두 가지는,

우동과 김밥 이었다. 우동하고요 김밥 주세요.. 하는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우동 하나! 김밥 하나! 를 소리치고는 포장마차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금새, 내가 마실 물 한잔과 젓가락, 숟가락, 김밥 한 줄과 우동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다시 내 앞으로 나타났다.

우와.. 디게 빨리 나오네요... 하는 나의 뜨악한 말에

그래야 많이 팔지... 맛있게 먹어요 학생. 하고 아주머니는 대답해줬다.


맛있게 먹어요 학생....

학생...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요즈음은 주로, 총각, 아저씨..라고 불리우던게 대부분인데.


우동을 한 젓갈 집어 먹으며 탁자 한 켠에 올려둔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았다.

오후 6시 20분...

몇 분 전에 소극장에 전화를 걸어서 4시에 시작한 공연은 6시 40분에 끝난다는걸 확인했다.

연극이 끝나고, 그 애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면 앞으로 20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느긋하게 우동을 먹었다.

우동을 한 젓갈 먹고, 김밥을 하나 주워 먹고, 컵에 담긴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천천히 우물거리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봤다.

조금씩 조금씩 어둠이 쌓이고 있는 동대문 운동장 사거리...


동대문 운동장에서 사당 방향으로 가는 전동차의 맨 뒤쪽에서 만나자고 그 애가 전화를 했다.

그때 나는 그 애가 얘기해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애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전동차가 들어와서 한 무리의 승객들을 쏟아냈고

또 그 만큼의 승객을 다시 싣고 떠나갔다.

지금 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데..혹시 그 차에 타고 있어?

하고 내가 물어봤을때 그 애는, 맞아 이제 그 역에 설 차례야. 맨 뒤로 와 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승강장의 끝 줄에 다다랐고,

이윽고 바람을 일으키며 전동차가 역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전동차 안에서 그 애는 나를 찾는 듯 플랫폼을 여기 저기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리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래 기다렸지. 했던 그 애의 말. 나는 대답 대신 그 애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불꽃이 잘 보이는 장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신용산역에서 내려서 원효대교쪽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에는 이미 경찰들이 나와서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게 된 도로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애와 나는 사람들로 복잡한 그 거리를 손을 잡은채 걸었다.

연극이 생각보다 재미 없었다는 얘기, 너무 오래 걸어다녀서 발이 아프다는 얘기,

그리고 불꽃을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섞인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가득한 사람들을 헤치며

다른 일행이 모여있다는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데 사진기는?

나를 보고 반가워 하던 일행중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사진기를 가져 오지 않았다.

이미 전동차 안에서 그 애가 빈 손인 나를 보고 카메라 안갖고 왔어? 하고 물어봤었다.

그런 그 애에게 오늘 불꽃은 사진에 담지 않고, 내 마음에 담는 거야.. 라고

짐짓 폼을 잡으며 말을 했던 나였다.

그런 나의 말에 에이~~ 하는 조그마한 야유를 하며 눈웃음을 지어줬던 그 아이.

그렇지만 사진기는 안가지고 왔느냐 물어보는 동호회의 선배에게

그런 허세를 부릴만한 숫기가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할거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긴 꼬리를 끌며 하늘로 올라간 빛줄기가 커다란 폭음을 냈다.

드디어 첫 번째 불꽃이 피어 오른것이다.

와아아..... 하는 사람들의 탄성이 주변에서 퍼졌다.

차~알~칵.. 하는 셔터 소리.

그리고 꺄하하 하는 웃음 소리.

어머 니 얼굴이 짤렸어~ 하는 유쾌한 소리들로 내 주변은 가득찼다.

나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서서히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 번째 불꽃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불꽃들이 폭발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불꽃이 사라진 자리를 또 다른 불꽃이,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예쁘게 채워나갔다.

불꽃이 터질때마다 와아.. 하는 탄성과 차~알~칵 하는 소리들과 유쾌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일년쯤 전에도.

그랬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저 불꽃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사진에 담기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었다.

한시간여의 불꽃 쇼가 끝나고 내가 담아낸 불꽃의 사진들을 보며 흡족해 할 때

그 애는 오빠는 사진만 찍었잖아. 불꽃은 하나도 안봤지. 하고 그 애는 무심히 말했었다.

그 무심한 말이 너무나 차갑게 다가와서 나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애와의 마지막 데이트로 남아있는, 작년의 불꽃축제....


그때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그 애가 바라본 불꽃을 나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더라면..

그 애가 예쁘다고 느낀 불꽃을 나도 예쁘다고 느꼈었더라면..

내 손에, 카메라가 아닌 그 애의 손이 쥐어져 있었더라면..

불꽃 사진이 아니라, 불꽃을 함께 바라보던 추억을 남겼더라면..


하나씩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어 있던 나에게 그 애가 다가왔다.

왜 혼자 여기 서있어. 다른 사람들은 저 앞에서 사진찍고 있는데...

나에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애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수놓여지는 불꽃을 향하고 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빠안히 들여다 보았다.

한참 불꽃을 보던 그 애는, 나의 시선을 느끼고서 왜에? 하는 입모양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며는...... 하고 또 폼을 잡으며 말을 시작하는 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며는, 네가 저 불꽃을 볼때 내가 너의 눈동자를 찍어보면

네 눈에 저 불꽃이 비치는게 찍힐 거 같아서 말이지....으아아~

야.. 정말 예술이지 않겠냐? 넌 눈도 크고 이쁘잖아. 아우~~ 아무도 그런 생각은 안해봤을껄?

이런게 바로 퓰리쳐 감인데 말야. 우와.. 하필, 사진기가 없네~~~ 으아~

하고 나는 허세를 부렸다.


그런 말을 주절주절..혼자서 신나게 떠들면서도 나는 그 애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혹시나..

그 애의 커다란 눈망울에 예쁜 불꽃이 담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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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8:48 2007/10/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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