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날 저녁 part I :: 2007/05/08 00:40

고객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핸드폰의 플립을 탁 소리가 나게 닫아버렸다.

전화를 하느라고 몸을 일으켰던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그때까지 기대어 서 있던 어느 집 담장에 허물어지듯 다시 몸을 기댔다.


하늘이 불그스름 하던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머리 위의 가로등이 없었다면 내 앞에 주차되어 있는 소나타 투 승용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만큼 골목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에 비춰가며 읽고 있었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안경을 벗어 뻑뻑해진 내 눈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런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 여학생은, 나를 미쳐 발견하지 못한 채 어둠이 깔린 골목길을 걸어오다가

가로등 밑에 서있던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 여학생이 흐읍~! 하고 놀랄 때 나는 무척이나 무안했다.

나는 고개를 더 숙이고 어짜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읽느라 애쓰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애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곳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 애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정말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지금은 희망을 걸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골목 끝의 담장에 기대어 서서 책을 읽던 몇 시간 동안

나는 그 애와 내가 서로 즐거운 기분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원을

세시 삼십 삼분에 한번, 네시 사십사분에 또 한번, 그리고 다섯시 오십 오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빌었던 참이었다.


지금은 왜.....

여섯시 육심 육분, 일곱시 칠십 칠분, 따위의 시각은 없는 것일까 하는게 불만이다..


처음에...

아홉시 반까지만 기다려보자 하고 작정했던 시각이 가까와오고 있었다.

사실 무덤덤한 듯, 혼자 콧노래도 흥얼거렸고,

숫적으로 열세에 몰려있는 한국군 전차부대가 치밀한 양동작전으로

중국군의 대규모 전차부대를 초토화 시킨다는 내용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었지만,

습관처럼 시계를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 애는...

저쪽 길의 끝에서 모퉁이를 돌아 이 골목으로 들어설 것이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내가 서 있다.


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대한 그와 비슷한 자세로,

가능한 한 그 주인공들처럼 멋있는 느낌으로 서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긴장이 조금씩 초조함으로 변해가는걸 느끼며 나는 신경질적으로 소설의 책장을 넘겼다.

관내 순찰을 돌고 있던 순찰차 안의 경찰관들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그 신경질이 더해졌다.

하긴...

그 애와약속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애가 왔다.

내 생각처럼.......버스에서 내려 이 골목까지 걸어오다가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여긴 어쩐 일이야.. 하고 놀라는 그 애에게, 그냥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봤어

하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조금 전에 왔다니까..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응.. 막 전화라려던 참이었는데 뭐..

오랜만에 친구들을 좀 만나느라고 늦었어.......


이 애가....

날 기다리게 한 걸 미안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의 아니게 그런 미안함을 느끼게 한 것에 내가 되려 더 미안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잠깐, 들어갔다 갈래?

생각지 못했던 그 애의 말. 나는 깜짝 놀랐다.

방이 많이 어질러져 있지만...차 라도 한 잔 하고 가.


그 아이의 말에, 나는 어떤 대답도 금방 나오지 않았다.

잠깐 들어갔다 갈래.. 하던 그 애의 말과, 늦은 밤. 빈 집. 그 애의 방. 그리고 우리 단 둘이...

하는 따위의 생각들로 내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얗게 채워졌다.

특히, 그 애의 방.. 우리 단 둘이.. 하는 생각을 할 때 순간적으로 못된 생각이 들기도했다.


내가 마음 속으로, 이런 전투를 치러내고 있는 사이에...

그 애는,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결국 나를 방으로 들였다.


청소를 못해서...... 하며 난감한 듯 웃음을 짓는 그 애를 보며, 나도 마주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하는 말을 하고 방을 나간 그 아이가

몇 분 후 다시 돌아 왔을 때는 내가 마실 콜라를 유리잔에 가득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얼굴의 화장은 그대로 였지만, 세련된 디자인의 상의 대신에 귀여운 그림이 프린트 된

펄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예쁘게 색이 바랜 청바지 대신

짙은 군청색의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콜라를 꿀꺼꿀꺽 단숨에 들이켰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목이 따가왔다.


매일 밤 그 애가 고단한 몸을 뉘어 잠을 자는 침대에 내가 살짝 걸터앉았다.

나에게서 유리잔을 빼앗은 그 애가, 그 잔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내 옆에 와 앉는다.

그 애의 무게로 나의 몸이 살짝 흔들린다.

그 애의 무게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제서야 그 애가 내 곁에 있다는게 실감이 난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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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8 00:40 2007/05/0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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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ns underwear.

    Tracked from Brittany spears underwear. | 2010/07/30 13:16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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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느 | 2007/05/08 09: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애(여자분)의 방 두 번째 간 건가요? 지난 번에 글 읽었어요. ^^
    기분 좋은 글이네요. 미소가 번져요.

    • 길고양이 | 2007/05/08 09:08 | PERMALINK | EDIT/DEL

      키키 ^^;; 두 번째가 아니라....

      지난번 보셨던 내용보다..시간상...더 먼저의 일입니당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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